[인터뷰] 용인세브란스병원 김수정 입원의학과장
"전공의에 기대지 않는 대학병원이 '뉴노멀'"
입원의학과 자리 잡으며 '파괴와 재건' 성공

대학병원이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전공의가 떠났기 때문이다. 전공의 복귀를 쉽게 입에 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행정명령과 처분까지 내세우며 복귀를 종용하던 정부조차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며 전공의 없는 대학병원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공의가 없는 시대를 5년 먼저 겪고 "살아 돌아온" 대학병원이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다. 전공의가 사직으로 떠난 게 아니라 "원래 없었다". 가장 최근인 2024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정원은 세 개 과에서 5명이 전부였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개원부터 입원의학과 설립을 주도한 김수정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우리는 이 상황도 앞으로 닥칠 일도 5년 먼저 겪었고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용인세브란스병원은 단지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아니라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대학병원"이 됐다. 입원의학과라는 "파괴와 재건"에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는 지난 2020년 개원과 역사를 함께 한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자리를 옮긴 김 교수가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녀" 입원전담전문의 29명을 모아 출발했다. 직접 입원의학과 일을 맡으면서 "혈액종양내과 매출 떨어진다고 자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1년 "종횡무진 우격다짐"의 나날을 보냈다.

5년 차를 맞은 입원의학과는 이제 병원 입원 부문의 "살림"을 맡고 있다. 입원 환자 주치의로서 진료 지침을 실제 임상 현장에서 적용할 때 기준을 세우고 각자 다른 입장을 조율한다. 병동이 늘 안정적이니 교수는 병원을 비우면서 시름을 놓는다. 의료진 간 의사결정은 "30초면 '콜'하고 끝"이다. "전공의 갓 마친 젊은 후배 대하듯" 수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전문의 대 전문의로 "손발을 척척 맞춘다".

입원전담전문의가 제 역할 하는 병원은 곧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 된다. 전공의가 500명이든 5명이든 관계없다. 전문의가 환자를 돌보면서 "돈도 버는" 병원은 전공의가 일주일에 100시간씩 "교수의 분신"이자 "모든 일을 다 하는 만능 초사이어인"이 될 필요가 없다. '교수님 전서구'로 병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김 교수는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대학병원이 바로 새로운 표준,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말한다. 뉴노멀은 곧 "옳고 그름의 문제와 멀고" 누군가의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제 우리가 "가야만 하는 방향"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의 경험과 성과는 '전공의에 기대지 않는 진료 시스템'을 주제로 HiPex 2024(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4, 하이펙스 2024)에서 공유한다. 이번 '하이펙스 2024'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다.

김 교수는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재직했다. 지난 2020년 용인세브란스병원 개원과 함께 근무지를 옮겨 입원의학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병원 의료정보부실장이기도 하다.

청년의사는 '하이펙스 2024'를 앞두고 강연자인 김수정 교수를 만나 전공의에 기대지 않는 대학병원의 모습에 대해 들었다.
청년의사는 '하이펙스 2024'를 앞두고 강연자인 김수정 교수를 만나 전공의에 기대지 않는 대학병원의 모습에 대해 들었다.

- 500명 넘는 전공의가 일하는 병원에서 '전공의가 없는' 병원으로 옮겼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교수라고 명찰은 달고 있는데 학생이 없다. 가르치는 게 내 역할이고 교육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교수 맞나 싶을 때도 있다. 아쉽다고 하기에는 무겁고 자괴감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섭섭함이 있었다. 참 희한한 감각이다. 나는 5년 전에 겪은 감각을 이제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을 거다.

- 5년간 용인세브란스병원이 거친 일을 이제 모든 대학병원이 겪게 됐다. 처음부터 전공의가 없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라졌다.

교수도 병원도 혼란스럽다. 대학병원이 전공의를 수련하는 한편으로 의존하던 부분이 정말 크다. 만화 '드래곤볼'을 보면 주인공 손오공이 원숭이 수준에서 초사이어인으로 진화해 간다. 전공의 수련 체제도 비슷한 느낌이다. 갓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던 전공의가 나중에는 만능 펠로우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이 만능 초사이어인이 도맡던 일을 일반인들이 갑자기 나눠 해야 하는 상황이다.

- 초사이어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가능은 하다. 대신 돈이 엄청나게 든다. 전공의가 매달 400만원 못 미치게 받으면서 주당 100시간 넘나들며 감당하던 업무량이다. 전공의 1명당 병원 인력 최소 4명은 투입해야 한다. 진료·외래·검사·수술처치 네 분야로만 나눠서 따진 최소한이다. 현재는 돈 쓸 각오도 생각도 없어서 제일 돈 안 드는 방법으로 메꾸고 있다. 교수를 시킨다. 20년 전에 다 해보지 않았느냐고 몇 달만 좀 버텨보자고 한다. 못 버틴다.

- 정부는 그래도 전문의 중심 병원을 하자고 한다.

그럼 입원전담전문의 수가부터 3배 올려야 한다. 전문의가 8시간 근무에 환자 1명당 1만원을 받는다. 정부는 하루 25명 담당하면 25만원 받지 않냐고 한다. 환자를 의사 혼자 보나? 배트맨도 로빈과 함께 일하고 아이언맨도 자비스하고 날아다녔다. 병원에서 원 맨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입원전담전문의 체제가 돌아가려면 1.5인분은 쳐줘야 한다. 지금은 겨우 0.5인분 준다.

-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면 연봉 상승 등으로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입원전담전문의 인력 구하기가 더 힘들어질 거란 예상도 나온다.

모든 병원이 일부 지역의료원처럼 연봉 4억원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입원전담전문의 급여 상승에도 한계는 있다. 2억원 선은 안 넘으리라 본다. 대형병원은 그만큼 지불할 의향이 없고 지역병원은 수도권보다 더 주더라도 여력이 크지 않다.

- 경제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앞으로 입원전담전문의들은 어떤 병원을 선택할까.

어느 병원이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기 더 좋은 시스템을 갖췄느냐로 판가름 난다. 일하기 편한가와 일하기 좋은가는 다른 문제다. 일이 많아도 일하기 좋은 곳이 있고 일은 적은데 일하기 힘든 곳이 있다. 꼭 병원만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업무량에 비해 더 받는데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 고민하게 하는 직장 말이다.

기본적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려는 의사는 '바이탈'에 관심을 두고 환자를 돌보는 데 매력을 느껴 병원을 선택한다. 소위 '바이탈 뽕'이라고 표현하는 심리다. 꼭 의사 아니어도 누구나 그런 심리가 있지 않나. 맡은바 내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감각, 성취에 대한 열망, 동료와 함께 고지를 넘어설 때 퍼지는 희열, 이런 감정은 누구나 공유한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냐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온다.

개원부터 입원의학과를 설치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입원전담전문의 역할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간다는 평가다.
개원부터 입원의학과를 설치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입원전담전문의 역할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간다는 평가다.

- 그런 시스템의 차이는 또 어디서 오나?

빠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이다. 피라미드를 무너뜨려야 한다. 지도교수에서 전공의로 내려가듯 수직적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이야기하고 업무를 나눠야 한다. 병원장부터 계급장 떼고 가자고 해야 한다. 우리는 개원 당시 최동훈 원장이 "입원의학과 키우려면 환자 몰아주고 권한도 줘야 한다"고 입원 환자 주치의를 모두 입원의학과에 넘겼다. 본인 환자부터 우리 과에 보냈다.

전공의를 매개로 하는 의사소통은 느릴 수밖에 없다. 전공의는 교수가 일정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침에 물어보면 저녁에 답이 온다. 우리 병원은 이 시스템이 파괴됐다. 교수끼리 메일하고 문자하고 전화한다. "내일 수술 가능해요?" "네." 30초면 끝이다. 나는 이런 의사소통이 전공의 없는 대학병원으로서 우리가 살아남은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 바람 같이 달려와 손발을 맞춘다. 서로 다른 과 교수끼리 서로 내 몸처럼 익숙하게 하나하나 맞춰가고 환자를 살려낸다. 이 경험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여기서 일해도 좋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 그럼 우리 모두 시스템 파괴자가 돼야 할까.

그냥 파괴자도 아니고 아주 건설적인 파괴자가 돼야 한다. 시스템을 파괴하는 동시에 재건해야 한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입원의학과를 열고 5년 차에 접어들면서 병원 구성원들이 입원의학과를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다. 수직적이던 의사소통도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5년이 더 지나면 이 체계는 더욱 견고해질 거다. 우리 경험과 체계도 물려줄 수 있다. 하물며 찌개 양념 조합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게 인간이다. 이런 경험이 이어지고 몇십 년이 흐르면 그 조직은 강한 조직이 된다.

지금 정부는 파괴만 하고 건설은 안 해서 문제다. 레고를 부쉈으면 다시 조립해야 뭐라도 생긴다. 그런데 레고 비행기 부수고 부품 잃어버리고서 남은 부품으로 우주선 좀 조립해 보라고 한다.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우리가 갈 새로운 '뉴노멀'

-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다.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란 곧 전공의가 적은 병원인가.

전공의가 많든 적든 전공의 소년소녀가장 안 시키는 병원이다. 생활비 벌고 집안 살림 떠받치라고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쓸 용돈만 벌면 충분하다고 할 때다. 나머지는 당연히 우리가 벌어야 한다. 전공의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는 대신 전공의가 있으면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는 병원이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다. 100가지 일 가운데 전공의가 5가지만 해줘도 흔쾌히 고마워할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한다.

- 이를 위해선 어떤 시스템을 파괴해야 하나.

몇천 병상을 모두 전공의 중심으로 운영하는 거대 병원 체제다. 병원이 작아져야 한다. 설령 전공의 중심을 벗어나 전문의 위주로 간다고 해도 2,000병상을 보유한 병원이 전문의만으로 굴러가기 어렵다. 입원전담전문의만 최소 80~100명이 필요하다. 내과 규모 조직이 하나 새로 탄생하는 수준이다. 이건 병원 운영진도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수련을 위한 병상과 아닌 병상을 나눠 운영 개념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1,000병상은 수련 기능을 배제하고 전문의 입원 진료로만 운영해서 전공의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아니면 교수가 전공의 업무를 더 많이 가져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 의료계가 받아들일 '뉴노멀'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전공의에게 기대지 않는 병원이 의료계가 받아들일 '뉴노멀'이라고 했다.

- 대학병원 교수들 역시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변화가 가능할까.

교수 역할도 분화해야 한다. 교수 한 명이 진료하면서 연구하고 교육하고 병원 행정 일까지 맡아보는 체제는 유지 불가능이다. 여태 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전공의를 갈았다. 전공의·펠로우가 다 준비하고 교수는 핵심만 해도 되니까 하루에 수술방을 몇 번씩 열고 외래 환자 수십 명 보면서 논문까지 쓸 수 있었다. 주 80시간이 아니라 아예 100시간, 120시간 병원에서 버티면서 교수 분신처럼 움직이는 존재가 있으니 가능했다. 이건 생각 못하고 '나 때는 다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초사이어인'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 파괴 후 '재조립'된 모습은 어떻게 예상하나.

미국식 트랙제와 비슷한 방향으로 전환될 거라 본다. 병원은 기초 환경만 제공하고 교수 본인과 연구원 월급은 연구 투자를 받아 스스로 벌어오는 시스템이 도래할 거다. 진료와 연구 비율을 반반으로 나누거나 아예 연구는 접고 100% 진료만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 이 방향으로 가야만 할까.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참 좋았던 그 시절'로 못 돌아간다. 이게 '뉴노멀'이다.

- 우리가 가야만 하는 방향이 곧 올바른 방향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올바른지 그른지 평가는 나중이다. 20년 뒤 누군가가 우리를 평가할 거다. 시간이 지나야 한다. 지금은 이 시간도 기다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어떡하나. 시간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저 살아남아야 할 때다. 줄일 건 줄이고 취할 건 취해야 할 뿐이다.

물론 용인세브란스병원 방식을 무조건 따라 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병원마다 알맞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강점은 키우고 때로는 과감하게 거둬들이기도 해야 한다. 파괴해야 살아남을 수도 나온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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