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병원①] 전문의 인건비와 건보재정
정재훈 교수, 전공의 비중 10%와 20% 시나리오 제시
전공의↓ 전문의↑ 인건비 최대 1조3674억 추가 지출
“전문의 역할 늘려 더 많은 재원 투입, 가능하겠나”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되려면 연간 인건비만 50% 이상 증가한다는 추계가 나왔다. 상급종합병원들이 전공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전문의 수에 따라 연간 인건비로 최대 1조3,000억원 이상 추가 지출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건강보험 재정이 전문의 중심 병원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가 건강보험통계연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등 정부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 결과다. 이는 지난 20일 청년의사가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서 개최한 ‘HiPex 2024(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4, 하이펙스 2024)’에서 공개됐다.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에 기대어 운영돼 왔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으로 전공의들이 사직하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도 상급종합병원들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공의는 총 1만2,774명으로 인턴 3,137명, 레지던트 9,637명이다. 전공의는 전체 의사 인력 11만2,331명의 11.4%를 차지한다. 특히 전공의의 68.0%인 8,687명은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한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2만2,683명 중 38.3%가 전공의다. 지난 2022년 당시 상급종합병원은 45곳이었다.

특히 ‘빅5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5곳은 전체 의사 인력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높았다.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소속 전공의는 2,745명으로 전체 의사 인력 7,042명의 39%를 차지한다.

전공의 사직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의 중심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10~20%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비중을 줄이고 전문의 고용을 늘렸을 때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청년의사).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비중을 줄이고 전문의 고용을 늘렸을 때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청년의사).

전문의 중심병원, 연간 인건비로 최대 1조3674억 추가 지출

정 교수는 전문의 수를 늘려 전공의 비중을 줄이는데 필요한 임금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2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활용했다. 직역별 평균 임금이 담긴 보고서는 2020년을 기준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체 의사는 2만236명이며 전문의는 1만1,717명이다. 전공의는 7,648명으로 전체 의사의 37.8%를 차지한다. 이같은 비중을 10%로 줄이면 전공의는 2,023명으로 5,625명 감축된다.

정 교수는 감축되는 전공의 5,625명이 하던 업무를 전문의로 대체할 경우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인건비를 추계했다. 그 결과, 전공의 1명을 전문의 1명으로 대체하면 상급종합병원들은 연간 총 4,813억원을 인건비로 추가 지출해야 한다. 추가 채용해야 하는 전문의는 5,625명이다. 전공의 2명을 전문의 1명으로 대체하려면 전문의 2,813명을 더 채용해야 하고 인건비로 연간 3,841억원을 더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정 교수는 전공의 1명이 하던 업무를 전문의 2명에게 나눠주는 게 이상적이라고 했다. 이 경우 상급종합병원은 1만1,250명을 더 채용해야 하고 연간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는 총 1조3,674억원으로 증가한다.

전공의 비중을 20%로 줄이려면 전공의 수는 7,648명에서 4,047명으로 줄여야 한다. 감축된 전공의 3,601명이 하던 업무를 맡을 전문의를 고용해야 하며 이에 따른 추가 인건비는 최대 7,298억원이었다.

전공의 1명이 하던 업무를 전문의 1명으로 대체하면 전문의 3,601명을 더 채용하고 인건비로 연간 3,059억원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 전공의 2명을 전문의 1명으로 대체하면 전문의 1,801명 추가 채용에 따라 인건비 384억원을 더 지출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공의 1명을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할 경우 추가 채용해야 하는 전문의는 7,202명이고 인건비로 연간 7,298억원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

전공의 비중 축소에 따른 전문의 추가 고용과 임금 수준(자료제공: 정재훈 교수)
전공의 비중 축소에 따른 전문의 추가 고용과 임금 수준(자료제공: 정재훈 교수)

“전문의 역할 늘려 더 많은 재원 투입, 가능할까” 건보재정 ‘경고음’

정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20%로 줄이고 전공의 1명을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하던 역할 중 상당 부분을 전문의로 넘긴다고 가정했을 때 각 병원마다 전체 의사 인건비 지출이 50%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전공의 비중을 20%로 하고 전공의 1명을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하는 시나리오에서도 전체 인건비는 25%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이 비용은 2020년을 기준으로 하기에 과소추계 됐을 가능성이 있다. 의사 임금 인상 등을 고려하면 최소한 전체 인건비 50% 이상 증가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의 중심 병원을 제도화하더라도 건강보험이 버티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시범사업을 진행할 재정은 충분해 보이지만 이 시스템(전문의 중심 병원)을 10년, 20년, 30년 끌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증가하는 의료비용을 지적했다. 의료비용이 증가하면 건강보험료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30년 뒤에는 “월급의 15%를 건강보험료로 내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어느 시점에는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누가 봐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이런 시스템에서 전공의 비중을 줄이고 전문의 역할을 늘려서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시스템 관점에서는 전공의가 현재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면서 대안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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