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료원 김명윤 시설차장이 말하는 ‘안전한 병원’
6월 22일 HiPex 2023에서 20년간 축적한 노하우 공유

공공의료정책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서울의료원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청년의사).
공공의료정책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서울의료원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청년의사).

병원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 건축공학도가 있다. 서울의료원 김명윤 시설차장이다.

병원은 환자 안전과 편의를 위해 시설 개편이 필요하지만 365일, 24시간 환자들이 있는 곳이기에 일부만 고치는 것도 쉽지 않다. 공간도 제한적이며 기준도 까다롭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병원을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은 더 어렵다. 지난달 26일 청년의사와 만난 김 차장은 이 모든 과정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라고 표현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 차장도 첫 출발은 여느 건축공학도와 다르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취직했지만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던 중 우연히 서울의료원에서 건축 분야 전공자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봤고 공공기관이니 정년은 보장되겠구나 싶어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건축공학도의 병원 생활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의 연속이었다. 대학에서도 의료기관은 ‘특수 분야’로 졸업 작품 기피 대상으로 꼽힐 정도로 다루기 까다로운 곳이다.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업무 매뉴얼도, 선임도 없는 상황에서 10억원 규모인 사업에 입찰부터 참여해야 했다.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도 몰라서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일했다. 마음의 부담이 너무 커서 매일 밤 12시를 넘겨 퇴근했다.”

서울의료원 김명윤 시설차장은 지난 26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공간도, 시간도, 재정도 제한된 공공의료기관에 정책을 3D로 구현하는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서울의료원 김명윤 시설차장은 지난 26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공간도, 시간도, 재정도 제한된 공공의료기관에 정책을 3D로 구현하는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서울의료원 공사 이력만 봐도 공공의료정책 변화가 한 눈에

서울의료원 신축·이전 작업도 처음부터 함께 했다. 강남구에 있던 서울의료원은 지난 2011년 5월 중랑구 신내동에 655병상 규모로 신축, 이전했다. 김 차장은 지난 2008년 신축 총괄팀 소속으로 합류해 설계는 물론 구성원 의견 수렴까지, 서울의료원 신축 과정에 모두 참여했다. 병원을 하나 새로 짓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김 차장의 시각도 달라졌다. 병원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고 공사를 하는 것이기에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생겼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해도 나에게는 아쉬운 면이 보여서 혼자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의료체계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에 대해서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공공의료기관인 서울의료원은 내부보다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급하게 공사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하는 보건의료정책이 바뀌거나 민간 영역에서 하지 못하는 사업을 맡아서 추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서울의료원은 “공공의료정책 테스트 베드(Test Bed) 역할”을 맡았다. 서울의료원에서 진행된 시설 공사 내역만 봐도 정책 추진 변화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공사 기일은 촉박하고 예산은 부족한데 명확한 지침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두루뭉술하게 글로 된 지침을 병원에 3D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렵게 구현했는데 정책 방향이 바뀌어 ‘쓸모없는 공간’이 돼 버리기도 한다.

김 차장은 “지원금이나 보조금이 꾸준히 나와서 연속성 있게 추진되는 사업보다는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자체 예산을 투자해 마련한 공간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쓸모없어지면 씁쓸하다”고 했다.

지방의료원 중에서도 ‘큰 냉장고’였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이렇게 쌓아온 경험치가 코로나19 팬데믹 때 빛을 발했다. 2003년 사스(SARS)에 이어 2009년 신종플루 사태를 겪은 뒤 신축된 서울의료원은 신종감염병 출현에 대비한 별도 병동을 반영해 설계됐고 완공 뒤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메르스(MERS)가 유행하기 전까지 시의회 등으로부터 환자도 없는 빈 병상을 유지하느라 돈만 쓴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미리 준비한 덕에 서울의료원은 메르스를 무사히 넘겼고 이 경험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뎌내는 힘이 됐다.

“코로나19는 메르스와는 전혀 달랐다. 별도 건물에 마련된 병동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해 본원 전체가 감염병동이 돼야 했다. 이건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메르스를 겪으며 경험치를 쌓은 구성원들이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의료원 시설관리팀은 빠르게 움직였다. 공조시스템을 바꾸고 동선을 분리하고 건물 7층에 종합상황실과 병동상황실을 설치하는 안을 마련해 다른 부서와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보완했다. 서울의료원은 일주일 만에 시설과 장비를 보완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서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으며 단일 병원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했다.

이처럼 서울의료원이 ‘공공의료정책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지방의료원 중에서도 ‘큰 냉장고’였기에 가능했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지방의료원 대부분 300병상 미만 규모인 반면 서울의료원은 655병상이며 1병상당 면적도 120㎡로 넓다.

“지방의료원 대부분 300병상이 안될 정도로 규모가 작아서 규모의 경제가 안된다. 무엇을 더할지 보다 덜어낼 생각부터 해야 된다. 의료기관에 의무를 지우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바뀔 때마다 ‘이 코끼리를 또 어떻게 냉장고에 넣어야 하나’라고 고민한다. 그나마 우리는 냉장고라도 크지만 다른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그 조건을 따라가기에는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

“유니버셜 디자인이 가장 필요한 병원”

서울의료원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받고 지난 2019년 운영을 시작한 과정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였다. 현재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받은 곳은 총 22곳이지만 서울의료원처럼 운영을 시작한 곳은 절반인 11곳뿐이다. 그만큼 평가를 통과해 운영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 차장은 장애친화 검진기관이라는 코끼리를 서울의료원이라는 냉장고에 넣은 방법을 HiPex 2023(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3, 하이펙스 2023)에서 공유한다. 하이펙스 2023은 오는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진행된다.

김 차장은 특히 병원이야 말로 성별과 연령, 장애 유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적용돼야 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고민보다 더 발전적인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발전적인 방향으로 서울의료원이 나아갈 수 있도록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언제든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그 첫 출발이 하이펙스 2023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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