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 로봇 도입 경험 공유
"로봇으로 업무량 줄이면 병원은 더 '사람다운 치료' 가능해져"
"무리한 투입보다 반드시 필요한 분야 어떻게 쓸지 숙고를"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지난 30일 청년의사와 만나 로봇 물류 자동화 시스템 도입 경험을 토대로 병원 로봇 도입 필요성과 함께 로봇 도입시 고민할 지점을 짚었다(ⓒ청년의사).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지난 30일 청년의사와 만나 로봇 물류 자동화 시스템 도입 경험을 토대로 병원 로봇 도입 필요성과 함께 로봇 도입시 고민할 지점을 짚었다(ⓒ청년의사).

우리가 로봇에 갖는 감정은 모순적이다. 로봇이 너무 사람다워서 나를 대체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다가도 정작 로봇이 기대만큼 사람처럼 굴지 못하면 실망한다. 반대로 일이나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은 로봇 같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시키는 일만 하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한 마디로 '유도리(융통성)가 없는'"이 '로봇다움'에서 혁신을 이끌어낸 곳도 있다. 바로 삼성서울병원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로봇이 병동에 필요한 물품을 자동으로 배송하고 의료폐기물을 수거한다. 그만큼 병동 의료진 부담은 크게 줄었다. 병동에 물건을 쌓아두고 관리할 시간에 환자를 한 번이라도 더 본다(관련기사: [신년특집] 밤마다 삼성서울병원 복도에 나타나는 '그들').

AGV(Automated Guided Vehicle) 로봇을 활용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주도한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로봇은 로봇다울 때 가장 이롭다"고 했다. 물품 배송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의료진이 환자 치료와 돌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대체 가능한 노동을 로봇에게 넘기면 "사람은 더 사람답게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 센터장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이자 삼성융합의과학원 디지털헬스학과 부교수로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머신러닝) 분야 전문가다. 대한응급의료정보연구회 회장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는 밤 9시 30분부터 각 병동에 물품을 공급한다(사진 제공: 삼성서울병원).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여유가 생기고" 성과가 눈에 보이자 현장도 '로봇 직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단지 보여주기가 아니라 '사람 직원'의 편의를 위해 일한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신뢰는 신기술 적용 과정에 따르는 "불편한 계곡을 하나씩 넘어가는 다리"이자 다음 혁신으로 달려갈 원동력이 된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로봇은 물류 담당 '직원'인 동시에 병원 디지털화의 핵심 '플랫폼'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AI·가상현실(VR)·클라우드·5G 등 디지털 기술이 로봇을 중심으로 물류 시스템과 결합했다. AGV 로봇에 적용한 인터페이스와 새로 마련한 시설장비는 다른 기술과 서비스 도입에 활용되고 이를 전담하는 조직을 움직인다.

차 센터장은 기술 도입은 "사용자가 이로움을 체감하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아직 성장 과정인 병원 로봇 분야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는 의료 본질을 해치지 않고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에서 로봇 활용이 가장 활발한 수술장은 로봇이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언제나 동일하고 정확한 '값'을 출력해서 가치가 있잖아요. 그게 바로 로봇의 능력이고 가장 로봇다운 일이죠. 삼성서울병원이 로봇을 도입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삼성서울병원 전 병동과 암병원에 AGV 로봇 6대가 일하고 있지만 병원 안내를 담당하는 등 환자·내원객과 '상호작용'하는 서비스 로봇은 없다. 여기 적용할 AI의 기술 수준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차 센터장은 로봇이 "로봇답게 일하면서 사람을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데 '사람다움'을 내세우며 섣불리 로봇을 투입하면 그간 쌓은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안드로이드(Android, 인간형 로봇)처럼 로봇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사용자가 기술과 서비스에 친숙해져야 하니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자는 병원이 선보이는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즉시 외면받죠. 일단 보여주기식이라고 인식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이런 삼성서울병원의 성과와 고민은 '로봇은 로봇답게, 사람은 사람답게'를 주제로 HiPex 2023(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3, 하이펙스 2023)에서 공유한다. 이번 '하이펙스 2023'은 오는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진행된다.

이 자리에서 '삼성서울병원 표' 로봇 물류 시스템의 시장성도 타진할 계획이다. 차 센터장은 로봇 물류 자동화 시스템으로 "우리 병원 스스로 로봇 도입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를 입증할 근거도 마련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로봇을 도입하는 병원이 늘어나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면 삼성서울병원도 수혜자가 됩니다. 저출생·고령화로 노동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로봇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분명한 흐름입니다. 로봇 물류 시스템이 원내 신뢰를 얻은 것처럼 다른 병원도 그 가능성과 필요성을 주목하고 함께 준비해 나갔으면 합니다."

'하이펙스 2023'을 기다리는 이들이 미리 풀어볼 만한 예습 문제(?)도 준비했다. 로봇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된 시대에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다. 표준화와 단순화, 모듈화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인가"와 연결된다.

"우리가 일하는 의료라는 분야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과연 어떤 일이 우리를 사람답게 할까요? 이번 '하이펙스 2023'이 그 물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