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강희경 교수
전국 소아신장분과 의사 35명뿐…"정책으로 위기감"
"잘못된 정책에 사직하지만 병원 떠나고 싶지 않다"

“여러분 곁을 지키지 못하게 돼 대단히 죄송합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들이 오는 8월 31일 사직한다며 환자들에게 전원 가능한 병원을 안내한 공지문에 적은 문구다. 현재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에 근무하는 교수는 단 둘뿐이다.

소아신장분과는 소청과 세부 전문의로, 전국에 활동하는 전문의 수는 35명에 불과하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병원으로 만성 콩팥병 등으로 투석을 받은 소아 환자 100여명 중 절반이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이들의 사직 날짜가 넉달 후인 8월 31일인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사직하기 전까지 최대한 환자를 진료 가능한 병원으로 안내하고 병원에 남은 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부분을 인수인계하기 위함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강희경 교수는 지난 23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으로 소청과 세부전문의 부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년 “올해만 버티면 내년엔 지원자가 생기겠지”라고 기대해 왔지만 정부 정책에 항의한 전공의들이 사직하면서 기대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평생을 바친 분야다. 사실은 정말 떠나고 싶지 않다"면서 울먹였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 교수는 23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정부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 교수는 23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정부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 사직하기로 하면서 원내 안내문을 공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에만 본 외래 환자 수가 6,000명이다. 사직하게 되면 당연히 환자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난달 안내문을 게재했다. 사실 환자 전원에 필요한 의뢰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환자를 의뢰한 의사들도 병원에 계속 남아 있을지 걱정된다. 게다가 서울대병원의 다른 진료과에서 진료를 보는 환자들의 경우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에 후임도 구해야 한다. 사직 일자를 8월로 잡은 이유도 병원에 남아 있을 의료진에게 충분한 정보를 안내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함이다.

-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부터 사직서를 들고 나오는 상황이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했을 때 기대감이 컸다. ‘곧 좋아질 거야. 조금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부가 펼쳐놓은 정책을 보면서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사직하기 전까지 정부가 쏟아낸 발언을 들으면서 일말의 희망도 사라졌다. 소청과 의사들의 수익은 정말 적다. 사실상 의사 중 꼴찌다. 그럼에도 병원에 남아 있던 이유는 ‘보람’이었다. 정부가 이를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내보낸 광고를 보면서도 기가 찼다. 의료진에게 ‘국민 곁으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환자 옆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나는 의사가 아닌가 싶었다.

정부가 현장과 협의되지 않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길 고집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이에 동의하고 인정한다는 뜻 아닌가. 그럴 수는 없어서 사직을 결심했다.

-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소청과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소수인 소아신장분과의 경우 위기감이 더 클 것 같다.

말도 필요 없을 정도다.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는 원체 그 수가 매우 적다. 로컬을 포함해 소아신장분과에서 활동하는 전문의 수는 35명이다. 병원에서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를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련을 받고자 하는 소청과 전문의가 점점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를 구하려는 대학병원에서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를 채용하지 못 하는 실정이다.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수가 적은 이유는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 투석 소아 환자가 생기면 24시간 365일 뛰어다녀야 한다. 서울대병원은 교수 두 명에 전임의가 있어 돌아가면서 일할 수 있었지만 작은 병원은 그게 어렵다. 환자 수도 적다. 의사들은 수익에 대해 병원에서 피드백을 받는데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들은 항상 꼴찌를 기록한다.

올해만 버티면 내년에는 소아신장분과를 전공하겠다는 의사가 생기겠거니 생각했지만 전공의들이 나간 마당에 누가 새로 들어올지 의문이다. 지금 남아있는 의사들이야 당직에 익숙해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 현장 의사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사법 위험에 대한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진료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도출된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소청과에 지원하지 않고 병원 의사들조차 떠나는 이유는 소송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소송 당하면 집안이 풍비박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교수가 되면 전공의들의 실수도 결국 교수가 책임져야 한다. 신이 아닌데 신처럼 완벽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탓도 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포함됐지만 사망 사고는 제외돼 있다. 의료사고로 17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하려면 의사 월급으로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소청과를 선택한 의사들은 소아 환자들이 웃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다. 적어도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게는 해줘야 하지 않나.

의사들의 삶의 질도 개선돼야 한다. 현재는 소청과 전공의들이 없어서 입원전담전문의를 채용해야만 병동이 돌아간다. 그러나 입원전담전문의에 지원하는 의사가 적어 보통 급여가 높게 책정된다. 반면 젊은 소청과 교수들은 논문 작성, 연구, 학생 교육을 떠맡고 환자까지 봐야 하는데 급여는 훨씬 적다. 교수로 남아있고 싶겠나. 그래서 떠난 의사들도 많다.

- 소아신장분과가 활성화되려면 어떤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수가 현실화가 필요하다. 성인 투석 환자의 경우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소아의 경우 2명의 간호사가 1명의 환자를 봐야 한다. 수가가 더 높아야 하는데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24시간 연속으로 혈액 내 수분 및 노폐물을 제거하는 혈액정화요법(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herapy, CRRT)을 시행할 때 소아신장분과 전문의의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들이 해당 원리를 제대로 공부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있으면 병원에서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를 더 많이 채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아신장분과 전문의들이 사실상 24시간 대기조인 만큼 한 병원에 적어도 두 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아 환자 수도 줄어드는 만큼 한 지역에서 여러 병원의 의사가 24시간 대기를 나눠서 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 사직 이후 계획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 환자를 보면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으려고 쌓아둔 논문도 많다. 그런데 막상 논문을 읽으면 환자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했던 게 계속 생각나서 속상할 것 같다. ‘예전에 이걸 알았다면 더 잘 치료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한다면 소아신장 교과서를 집필하고 싶다. 평생을 바쳐서 한 일인 만큼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실은 정말 병원을 떠나고 싶지 않다.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부가 의사들에게 숙이고 잘못된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는 상황인데 뻔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어떻게 동참할 수 있겠나.

- 동료 교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각자 사정이 다를 것이다.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해도 환자를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고 인수인계를 할 수 없다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힘든 과정을 견디고 있는 만큼 잘 버텨보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들여 지은 이 탑이 어떻게든 유지될 수 있도록 절망감을 승화시켜 보다 나은 내일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어떤 위치에 있던, 어떤 선택을 하던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라 믿는다.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아는 만큼 '힘내자'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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