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중앙의료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4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긴급 심포지엄에서 가장 인상을 남긴 것은 조동찬 SBS 기자가 발제한 ‘국민의 관점’이었다. 의대증원 이슈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을 실감했다. 여전히 국민들은 의사들이 ‘환자를 버리고 떠난’ ‘환자를 볼모로 잡는’ 이들로 생각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
가톨릭중앙의료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의사들의 주장은 다소 어렵고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정치가 고장난 강대강 대치 속에서, 어느 한쪽의 생각이 완전히 관철되어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어보인다.

의학은 증거와 사실에 기반한 학문이다. 수년의 의학 교육을 거친 의사들도 자연스럽게 과학과 합리성에 기반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는 의학과 같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고, 감정과 공감의 지배를 받는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와 환자간 ‘정보격차’가 큰 의료 영역에서 의학의 언어로만 외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오만해 보이기 쉽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의 강경한 발언은 잠깐의 사이다가 될 수 있으나, 불행히도 다수 국민들의 공감은 얻지 못할 것이다. 메신저에 대한 공격과 조롱, 정부와 환자를 가르치려는 태도, 현학적이거나 전문적인 용어의 사용 또한 마찬가지다.

대중은 때로 어리석은 듯 보이지만, 거짓과 진실, 위선과 참,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 ‘진짜’는 설득력이 있다.

천관율 기자(얼룩소 에디터)는 저서 ‘의사들이 아니꼬워서라도, 의료 개혁 이렇게 하면 안 된다’를 통해 정재훈, 조용수 교수님의 말과 의료 현실을 잘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의료는 환자정부의사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동화같은 현실 속에 있다. 소비자인 환자들은 미국처럼 병원비가 비싸지도 않지만, 유럽처럼 진료를 위해 몇 달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정부는 미국처럼 아픈 국민을 외면하지도 않지만, 영국처럼 의사 월급을 주지도 않는다. 의사들은 안정적인 소득과 면허의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구조는 세 주체의 ‘암묵적 동맹’으로 이뤄진다. 진료 행위가 늘어날수록 수익이 느는 구조 덕분이다. 그리고 여기, 진료 행위를 늘릴 수 없지만 돈이 되지 않는 분야인 ‘필수적 의료’를 떠받드는 숨은 주체가 있다. 바로 전공의다.

전공의는 몸값은 전문의의 3분의 1이고, 노동량은 3배다. 단순히 계산해도 같은 값으로 전문의 열 명분의 일을 한다. 주 100시간 가량을 일하는 부당한 처우를 버티는 것은 다름아닌 ‘수련 과정 이후의 보상’ 때문이다.

미래 세대 의사들이 ‘암묵적 동맹’에 진입하기 위해 젊은 시절 ‘필수적 의료’에서 값을 치르는 구조다. 일종의 국민연금과도 같은 ‘세대간 연대’의 개념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전공의는 분명 기득권이 아니다. 그러나 전공의는 평생 직업이 아니고, 이들은 전문의가 된다. 즉 우리는 ‘미래의 기득권’이다.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상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필수적 의료’의 종사자들을 머무르게 하는 강한 유인인 생명을 다루는 사명감과 명예, 보람과 같은 비금전적인 가치도 위협받고 있다. 의사로서 존경받지 못할 바에야,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것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그 내용도, 방향도 잘못되었다. ‘부족한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논리는 오류가 있다. 첫째, 의료 수요 증가가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의사 수가 추계되었고 둘째, 증원된 의사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암묵적 동맹’이 깨어진 상태에서 굳이 젊은 시절의 4~5년을 바쳐가며 수련할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필수적 의료’를 지탱하는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병원을 떠난지 11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근거가 보이지 않는 2,000명 증원에 따른 황당함과 분노가 지배했다면, 이제는 병원을 지키는 의료진의 지친 얼굴과, 불안에 떠는 환자들의 울먹임이 눈앞에 교차한다.

이대로는 파국뿐이다. 우수한 한국 의료는 하루가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현장과 소통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전공의 복귀에는 명분이 필요하지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 비대위가 제시한 ‘정부 정책 유예, 전문가 의사수 추계’ 주장은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원점 재검토’라는 의료계 단일안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것은 옳다 그르다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의 ‘현실성’의 문제도 아니다. 당장의 파국을 막고, 환자들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자는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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