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대 권복규 교수, 의학회 뉴스레터에 기고
"교육병원 유지 위해 지역 1·2차 병원과 무한경쟁"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지역 의료 생태계까지 초토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지역 의료 생태계까지 초토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의과대학 증원으로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지역 의료 생태계가 초토화되는 지경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임상 실습을 위해 무분별하게 실습 병원 규모를 늘렸다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의 1·2차 병원과 경쟁하게 되면서 지역 의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최신 호에 이같은 내용이 담긴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을 기고했다.

이번 증원으로 의대 정원은 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7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권 교수는 현재의 의학교육 인프라로는 한 번에 2,000명이 늘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의학교육자는 없을 것”이라며 “기초의학 교수 정원은 적정 수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으며, 조교 등 지원인력조차 충분히 지원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데바의 기증은 학교마다 큰 편차를 보이고 있고 실험·실습 시절과 장비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라며 “게다가 대학 등록금은 10년 이상 동결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임상 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했다. 카데바 수급의 경우 예산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학생을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카데바 수급과 같은 문제는 단지 예산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기초의학 교수 양성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의대 졸업자들이 교수직을 원할 만큼 매력적인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2,000명을 당장 증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겠나”라고 되물었다.

정부 지원으로 적시에 강의실과 실습 공간, 장비 등은 마련되겠지만 이를 운용할 인력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한번 고용하면 쉽게 해고하기 어려운 만큼 인건비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의학교육을 위해서는 초기 투자 비용뿐 아니라 유지 비용도 크게 들어가는데 의대 등록금만으로는 이를 모두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교육에는 초기 투자 비용뿐 아니라 유지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정원이 늘어나며 실험·실습 장비는 유지 관리와 교체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그 예산도 적지 않다”며 “그런데 의대 등록금은 이를 마련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임상실습도 문제라고 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정원이 200명이 된 학교 기준 본과 3·4학년이 실습을 나가려면 실습병원은 최소 1,000병상은 돼야 하며 교수 수도 늘어나야 한다.

이에 교육병원 유지를 위해 지역 소재 병원들과 환자 유치 ‘무한 경쟁’을 하다가 결국 지역 의료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해당 지역 주민은 드디어 상급종합병원이 생겼다고 환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000병상의 상급종합병원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배후 인구가 100만명은 돼야 한다”며 “그러나 인구 100만명 이상이 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몇이나 되는가. 그 지역 인구가 모두 그 병원에 온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권 교수는 “교육병원 유지를 위해 지역 1·2차 의료기관과 경쟁하게 되면 지역 의료 생태계가 초토화될 것”이라며 “또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들은 해당 분야의 세부 전문가인데 환자 풀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졸업 이후 전공 수련에서도 역량이 부족한 전문의가 배출될 수 있다고도 했다.

권 교수는 “현재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 해 5,000명의 신규 전공의가 매년 배출되면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전문의가 배출된다 한들 역량이 의문에 부쳐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러 이유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더라도 다양한 요소를 신중히 살피고 여러 각도에서 시뮬레이션해 본 다음 현재의 의학 교육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야 한다”며 “의학교육은 단지 의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체 의료시스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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