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대생 단체 투비닥터 김경훈·박정은·윤태한
〈코드 블루〉 발간 계기 "위로와 공감 보내고자"
"의사라는 아이덴티티를 통해 지켜야 할 가치 고민"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면서 이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 지 4개월여. 그간 의대생들은 의대 증원 정책의 당사자로서 관련된 학칙 개정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일부는 총장실 앞에서 시위에 나서는 등 정책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알렸지만, 어느 순간 이들의 목소리는 허공 속에서만 메아리쳤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함, 의료계의 한국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우려 등에 밀려 의대생들의 목소리는 묻혀지고 말았다.

의대생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투비닥터'는 이렇듯 작아지고 있는 의대생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의대생의 시선으로 보는 현 사태, 한국 의료의 올바른 길을 찾는 의대생의 고민과 생각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2024년을 보내는 의대생을 위로하고 "혼자가 아니다"라는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투비닥터가 출간한 책인 〈코드 블루: 의대생 대한민국 의료를 진단하다〉가 바로 그 결과다. 책에는 카드뉴스를 통한 팩트체크와 칼럼 등 2024년을 보내는 의대생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의사는 투비닥터를 만나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에는 투비닥터 김경훈 대표(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전공의 3년차, 이하 김경훈)와 책 제작을 총괄한 박정은 편집장(단국의대 본과 3학년, 이하 박정은), 디자인을 맡은 윤태한 디자인팀장(고려의대 본과 3학년, 이하 윤태한)이 함께 했다.

한편, 투비닥터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의대생을 위한 모든 것'을 제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의대생의 진로와 관련해 잡지, 유튜브 영상 등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지난해와 올해 전공박람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 2월부터는 '의료정책 TF'를 발족해 의료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의료계 안팎에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투비닥터 김경훈 대표, 박정은 편집장, 윤태한 디자인팀장은 청년의사와 만나 '코드 블루'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청년의사).
(왼쪽부터) 투비닥터 김경훈 대표, 박정은 편집장, 윤태한 디자인팀장은 청년의사와 만나 '코드 블루'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청년의사).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투비닥터는 원래 잡지를 출간했는데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김경훈: 투비닥터가 의학도의 진로를 돕는 것을 미션으로 둔 만큼 인생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이번 사태의 대책이나 출구 전략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본질’이 잊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2020년을 되돌아보게 됐는데 당시에도 여러 기록물들이 나왔더라. 그래서 2024년을 정리한 기록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주체는 정부, 병원, 어떤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닌 의대생과 전공의여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책을 내보기로 했다.

박정은: 원래는 잡지를 냈는데 이번엔 성격이 다른 주제를 다루는 만큼, 매체를 다르게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책은 호흡이 긴 만큼 논리적으로 전개돼야 하고 관통하는 주제 의식도 있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책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책은 수명이 긴 매체라고 생각한다. 파손될 위험도 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 보더라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모든 게 마무리됐을 때 올해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윤태한: 이 시기를 어떻게 해야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책 제작을 시작할 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컸다. 디자인과 집필 등 콘텐츠 자체 제작이 가능했기에 우리의 능력으로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자는 생각에서 참여했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 자체 제작으로 출판까지도 직접 해서 무료로 배포했는데, 비용은 어떻게 충당했는지도 궁금하다.

김경훈: 처음부터 의대생과 의사에게 모두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비용을 고려했을 때 많이 고민했지만 책의 취지를 생각했을 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료계 밖에 우리의 목소리를 낸다거나 설득하겠다는 의도가 아닌 젊은 의사에게 위로를 전달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부터 출판까지 전부 직접 참여해 제작비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여러 도움도 받았다.

박정은: 3월 초에 책을 내기로 결정한 후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일주일 동안 회의를 진행해 각 주제를 팀원들에게 배분하고 2주 만에 초고를 작성한 후 2~3주 동안 교정, 편집, 디자인을 진행했다.

윤태한: 잡지 제작 등을 하면서 팀원들이 직접 기획도 하고 글도 직접 쓰고 디자인도 하다 보니 인건비를 대폭 아낄 수 있었다. 자체 제작이 가능했던 이유다.

-책을 구성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 구성했나.

〈코드 블루〉는 제1장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제2장 세계 각국의 의료, 제3장 우리들의 목소리, 제4장 쉼표로 구성돼 있다.

박정은: 어떤 문제로 현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 본질과 이유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 방법이 동반돼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고 싶었다.

초반에는 카드뉴스로 팩트를 체크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정리했다. 2장에서는 해외 의료 시스템을 다뤘는데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점이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보길 바랐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수 있도록 논의의 흐름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3장에는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의 칼럼을 담았다.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위로를 전하고자 했다. 마지막 장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마음의 부담을 덜었으면 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조언과 우리가 했던 활동, 웹툰 등을 배치했다.

윤태한: 디자인 팀원들과 함께 폰트나 색감 등을 함께 정했다. 표지의 경우 의사들이 병원에서 나가고 있는 모습이 그 어떤 상징보다 현 상황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채택했다. 하늘의 색도 마냥 밝은 게 아니라 현재 의료에 위기가 있지만 나중에 희망이 있으면 한다는 의도를 담고 싶었다. 또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게 데 집중했다. 소설, 비문학 등 종류별로 책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이 읽기 편한 글자 크기, 폰트, 행간 등을 결정했다.

-젊은 의사들이 직접 쓴 칼럼들이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등 형식도 다양했는데, 이 파트에서 가장 신경 썼던 점은.

제3장 '우리들의 목소리'에는 의사로서의 직업전문성에 대한 고찰, 현 사태를 미궁에 비유하며 '라비린토스(Labyrinthos)'에서 실뭉치를 통해 탈출한 아리아드네처럼 지혜롭게 해결하자는 칼럼 등을 포함해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인터넷에 떠다니는 여론과 정보를 살펴볼 때 주의해야 할 '안내서' 등의 칼럼이 실렸다.

박정은: 내 목소리를 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 학문으로서의 ‘의학’뿐 아니라 ‘의료’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관련 자료들을 읽고 나름대로 재구성한 후 이에 대한 ‘내 의견’을 담고자 노력했다. 칼럼을 실은 의대생뿐 아니라 주변의 의대생들과도 얘기하다 보면 다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것을 알게 된다. 우린 단지 글로 적었을 뿐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김경훈: 칼럼을 피드백하면서 주로 잘못된 정보를 담거나 편향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봤다. 또한 팀원 대부분이 의대생이다 보니 의사의 관점에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도 살펴봤다. 톤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다. 어떤 내용을 빼자니 알맹이가 사라지고, 넣자니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기에 그 중간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젊은 의사들이 다양한 진로를 모색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런 ‘확장성’의 일환이라고 보면 되나.

박정은: 책으로 뭔가를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비임상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도 많다고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일에 종사하던 의사라는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어떤 가치와 본질을 지켜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책을 낸 후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박정은: 책을 완성했을 때에는 매우 가치 있는 일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한 달 반을 쏟아부었는데 열정에도 한도가 있다 보니 작업을 마무리한 후 한동안은 허탈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인쇄된 책을 받자마자 다 사라졌다. 마치 내가 낳은 자식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방마다 책을 한 권씩 넣어두고 지나갈 때마다 볼 수 있게 해놨다. 주위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아 뿌듯하다.

김경훈: 어릴 때부터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팀원들과 다 함께 인생의 목표를 하나 이룰 수 있어 기뻤다. 잡지를 처음 냈을 때 느낀 감동을 이번에도 느꼈다.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본업에 소홀하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투비닥터 대표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병원에 적극 알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출간하면서 주위 전공의 친구들도 투비닥터 활동에 대해 알게 됐고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지난 4년 동안 투비닥터 활동을 해온 것에 대한 보람을 찾게 됐다. 전공의와 투비닥터 대표로서의 두 가지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윤태한: 최종본을 받기 전에 인쇄소에서 여러 테스트 버전 책을 받았다. 막상 책을 처음 받은 순간에는 감동했다 보다는 똑바로 잘 인쇄됐는지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주위 친구들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해줬는데 그런 과정에서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

투비닥터 팀원들이 책을 살펴보며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청년의사).
투비닥터 팀원들이 책을 살펴보며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청년의사).

-책은 2024년을 정리하고 기록했는데, 10년 후에 2024년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해로 기억됐으면 하나.

박정은: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너무나 아프지만 한 번 건드리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다. 필요했던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문제가 잘 매듭지어지는 게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이가 없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 시기를 통해 많이 성장했다고 느낄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문제를 알아보고 내 나름의 의견도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의학 공부를 할 시간에 밀렸던 책도 읽고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김경훈: 쉴 새 없이 달려오다 처음 주어진 휴식이다. 평소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어진 길만 달렸는데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 길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막연하게 ‘교수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왜 교수가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 사태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어떤 식으로 미래에 영향을 주던 마음의 준비는 마친 상태다. 그래도 많은 부분을 고민할 수 있게 됐던 기회로 기억되길 바란다.

윤태한: 어쩌다 보니 긴 시간이 주어졌는데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이 시기를 그저 흘려보내지는 않았다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미 있게 보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현실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맹휴학, 사직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경훈: 정책을 떠나 현 사태로 의사와 환자 사이가 더 멀어졌다는 우려가 크다. 주변의 또래 의사들 사이에서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환자를 위해 일한다는 성취감과 보람이 있었는데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원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병원 수익이 날지, 소송을 당하지 않을지가 기준이 될 것 같다. 의사들도 환자에게 받은 돈 만큼의 가치만 되돌려 주고 환자들도 더 이상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 당연해질 것 같아 걱정된다.

윤태한: 이 사태가 진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또 사태가 해결된 후 학교에 돌아가고 병원 실습을 시작하면 환자들을 마주할 텐데 이에 대한 두려움도 생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만큼 막막하다.

-또 책을 낼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경훈: 책 출간에 다시 도전해 보고자 한다. 이번에 부분적으로만 나온 수가나 의료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책도 생각하고 있다. 또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주인공이 돼서 각자 의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수필을 엮은 에세이도 구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박정은: 우선 팀원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다.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냈어야 했는데 잘 따라와 줘서 고마울 뿐이다. 지금 어두운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젊은 의사들에게는 개인적인 삶도 돌보면서 이 시기를 현명하고 건강하게 보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경훈: 고생한 팀원들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참여한 모두가 책을 쓴 작가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동료 의사들에게는 너무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현명해지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윤태한: 다들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까지 투비닥터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을 많이 담당해 왔는데 다음에 책을 내게 된다면 나도 내 목소리를 담은 글을 써보고 싶다. 같은 의대생들에게는 이 시기를 잘 견디고 잘 지나가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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