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차관 "의대 증원 1년 유예 검토"→"예정 없다" 번복
전공의들 "유예 기간 동안 단체행동 금지법 만들 것" 회의적
의료개혁 논의 사회적 협의체에도 "의견 반영 어려울 것"

경영위기에 처한 상급종합병원들이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이 재정 지원 명분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청년의사).
정부가 1년 동안 의대 증원을 유예한다고 하더라도 전공의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청년의사).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추진과 관련해 “대화를 우선시하겠다”는 태도로 나서고 있지만 전공의들의 마음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설령 의과대학 증원을 1년 유예하거나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에 전공의가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지난 8일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한 후 재논의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반나절 만에 “검토한 바 없으며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박 차관은 이날 오후에 열린 긴급 브리핑에서 “2,000명 증원은 오랫동안 검토해서 결정한 숫자”라며 “그 결정을 바꾸려면 합당한 수준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통일된 안이 제시가 돼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부 측에서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언급한 것에 대해 전공의들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현 사태가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증원을 유예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반면 유예가 되더라도 시간끌기에 불과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경상도권 소재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던 전공의 A씨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만약 증원을 1년 늦추게 된다면 더 정확한 수치로 정원을 책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 사태가 장기화되면 전공의들이 면허가 정지되고 의대 복학생들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길텐데 정부도 해결책을 제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던 B씨는 “정부가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더라도 결국 추후에 증원을 추진할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전공의 단체행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투쟁 동력을 막기 위해 준비할 것 같다”면서 “정부가 말을 계속 번복하고 있다. 의료계에 통일된 합의안을 들고 오라고 하기 전에 정부 먼저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병원 전공의였던 C씨도 “지난 2020년에도 의정합의를 맺으면서 코로나19로 (의대 증원과 관련한 논의를) 유예한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라며 "1년을 유예하거나 증원 결정을 미룬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 개혁안 추진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로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협의체에 전공의들이 참여하게 되더라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지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의료계 외 다른 단체들이 참석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C씨는 “전공의 수련을 논의하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 13명 중 전공의는 2명에 불과하다. 전공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전공의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협의체에 전공의가 포함되더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럴 바에 차라리 의료계 목소리라도 잘 반영되는 구조로 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다 사직한 D씨는 “전공의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취원회가 제시한 7대 요구안이 관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협의체 참석에도 반대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협의체에서 시민단체를 제외한 의정협의 방식으로 의료 개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정말로 의료계와 전공의를 설득하고 싶다면 진정성 있는 행동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C씨는 “기적처럼 정부가 의대 증원 추진을 중단하고 지난 1월로 모든 조건이 되돌아 가더라도 이젠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며 “이번 사태를 겪으며 허탈감을 느낀 동료들이 많다. 설령 대전협에서 모든 사태가 종료됐으니 복귀해달라고 하더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이들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할 만큼의 설득력이 있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젠 정말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정부에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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