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토론식 교육 사라지고 ‘온라인 교육’ 대체한 의대 교실
역량바탕 의학교육과 정반대로 흘러가…“의대 교육철학 버려야”
현실적으로 8000명 교육 불가능…‘서남의대’ 전철 밟나 우려도
이대로는 교육대란 불가피…“고3 학생들과 학부모 들고 일어선다”

 2025학년도 의학교육 역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대로 의대생 유급으로 이어지면 내년도 의대 40곳에서 8,000여명의 학생들을 동시에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청년의사).
2025학년도 의학교육 역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대로 의대생 유급으로 이어지면 내년도 의대 40곳에서 8,000여명의 학생들을 동시에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청년의사).

제22대 총선 이후에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과 의료개혁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 발표에 의료계가 얼어붙고 있다. 정부의 강경 추진 방침에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해진 것은 물론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움직임도 거세다. 초유의 유급사태를 막아보겠다는 교육부 요청에 수업을 재개했던 의대들도 수업 참여율이 떨어지는데다 예과 1학년들 사이에서도 수업 거부가 확산되면서 2025학년도 의학교육 역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의대생들에게 집단유급이 적용되든, 휴학이 인정되든 현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내년도 의학교육 현장의 혼란은 예정된 셈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2025학년도 정원 3,058명에 2025학년도에 증원되는 2,000명, 올해 유급되는 3,058명 등 총 8,116명이 의대를 졸업하는 6년간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인턴과 전공의 수련 과정도 함께 거쳐야 한다. 교육부는 “휴학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사태 해결을 위한 별다른 방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선 내년도 의대 40곳에서 의대생 8,000여명을 대상으로 교육 시켜야 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의대 교수들은 의대생 8,000명 교육이 실제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4명 가족이 살던 집에 8명이 같이 살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나누고 공유하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했다. 결국 교육 파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24년 3월 기준 충북의대 강의실과 실습실 현황 자료(자료제공: 전의교협 비대위).
2024년 3월 기준 충북의대 강의실과 실습실 현황 자료(자료제공: 전의교협 비대위).

충북의대의 경우 현원 49명에 내년도 증원되는 151명, 올해 유급되는 49명까지 250여명이 수업을 함께 들어야 한다. 이는 현원의 5배 넘는 수치다.

최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브리핑에서 공개된 충북의대 강의실과 실습실 현황을 토대로 살펴보면 현재 예과 1학년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은 1개에서 4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토론식 강의실과 실습실, 해부학실습실도 마찬가지로 늘어나는 인원에 맞게 4개 이상 더 필요하다. 수용인원이 20명인 임상술기센터는 현원 49명이 교육받는 지금도 빠듯해 250명이 같이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5배 더 큰 공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도 추가 채용해야 한다.

충북대 고창섭 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증원에 대비해 이미 철저히 계획을 해놨다”며 정원이 4배 더 늘더라도 의료 교육의 질은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부족한 공간 문제는 기존 의대 2호관 건물 2개 층을 증축하고, 오는 9월 개관하는 오송캠퍼스를 이용해 부족한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획이다. 의대 교수도 현재 131명에서 100명을 더 추가할 예정이다.

거꾸로 가는 한국 의학교육…"의사 양성 목표 잃어"

의대 교수들은 당장 물리적인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최근 교육부와 대학들이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시행한 온라인 수업이나 동영상 교육으로 전환도 방법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교육자와 피교육자 모두 바라는 “최적의 의학교육 환경”에 대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소규모 토론수업 등 역량바탕 의학교육(Competency Based Medical Education)을 고민하고 있는 의학계 교육 방향과도 맞지 않다.

지방 사립의대 A교수는 “물리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의학교육 철학도 없이, 의학 교육방향과 정 반대되는 환경에서는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의학교육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에서는 예과 1학년은 학원에서 강의하듯 (공간에) 집어넣어 수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의학교육은 그렇게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립의대 B교수도 “환자안전과 사회적 책무성 등을 기르기 위한 역량바탕 의학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좋은 의사 배출을 위해 다양한 교육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며 “소규모 토론식 학습이나 소규모 멘토링을 통한 임상교육 등이 필요한 게 의학 교육인데 강의식 수업만으로 좋은 의사를 배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부실 임상실습 의평원 평가인증 통과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임상실습이 시작되는 본과 3학년과 4학년 수업도 문제다. 내과와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을 돌며 실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임상실습을 진행하는 교육병원 인프라가 충분치 않다는 게 현실이다. 교육병원 내 의대생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물론 교육자인 교수들도 부족하다. 특히 실제 환자 진료에 참여해야 하지만 늘어난 의대생 수에 비해 병상이 적은 지방 교육병원의 경우 “수박 겉핥기”만 하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또 이대로라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통과도 어렵다. 의대가 꼭 받아야 하는 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 따르면 ▲의대생에게 주당 36시간 이상, 최소 52주의 임상실습이 이뤄져야 하고 ▲단순 관찰 등 수동적 방법 이외에 의료진 일부로 실제 진료에 참여하는 등 의사 업무를 익힐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의대 졸업생은 의사국가고시를 치를 수도 없다.

또 다른 국립의대 C교수는 “의대생 본과 임상실습은 중요하다. 이대로는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2,000병상 되는 서울대병원도 의대 정원 200명은 수용하기 어렵다. 지방은 점차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생 수련을 위해 교육병원 병상을 늘려 몸집을 키울 수도 없지 않나. 병원 내 의대생들이 머물 공간도 필요하지만 여유 공간을 만들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사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D교수는 “교수들이 의대생 교육만 하는 게 아니다. 임상도 봐야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 승진에 도움도 안 되는 학생 교육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2명 가르칠 때와 4명 가르칠 때는 교수가 느끼는 부담감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임상 교수 입장에서는 올해 학생들이 유급돼 내년으로 밀리게 되면 현실적으로 임상교육 자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도 했다.

D교수는 “인구 감소로 소아환자 자체도 줄었다. 병원 규모가 크지 않은 교육병원들은 학생들에게 보여줄 환자가 없어 그것도 고민이다. 충분한 환자 케이스를 경험해야 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또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라고 했다.

D교수는 “임상실습을 전담으로 할 수 있는 임상교수를 별도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 경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소청과 교수를 채용할지는 모르겠다”며 “병원들이 교육 전담 임상교수를 채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거나 교육에 최대한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나 진료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교육의 질을 담보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실교육·교육대란' 우려하는 의대 교수들

전북의대가 서남의대 폐교 당시 서남의대 학생들을 수용하며 겪은 문제들을 전국 의대들이 고스란히 겪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전북의대는 준비 없이 폐교된 서남의대 학생들을 수요하면서 ▲강의실 공간 협소‧임상술기시설 부족‧임상실습 부족 ▲교수 부족 현상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열악한 임상실습 환경과 젊은 임상교수의 교육현장 이탈이 가속화되는 현재로서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의대들도 이같은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2025학년도가 되면 의대로 쏟아져 들어올 8,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의학교육 파행을 우려한 의대 학장들이 내년도 정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라도 대학 총장 선에서 정리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내년도 의대 정원을 받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될 경우 사회적인 대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학교육 전문가인 E교수는 “여러 가지 시설과 인력, 예산 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막는다고 해서 금방 시설을 늘릴 수도 없다. 시설을 늘리더라도 인력은 어떻게 구할지도 막막하다. 내년은 당장 8,000명이라지만 그 다음해 다시 5,000명으로 줄어드는 걸 알면서도 무작정 투자할 수도 없다. 현실이 그렇다”고 답답해했다.

E교수는 “의대 정원을 안 받겠다고 할 수도 없다. 이건 사회와의 약속이다. 지금 의대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이 있는데 올해 (정원을) 안 받겠다고 하면 올해 고2 학생들과 경쟁하게 된다. 사회 분란까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며 “고3 학생들은 물론 고2 학생들 그들의 학부모들까지 들고 일어설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혼란이다. 정부에서 결단을 내려주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